APMA(Amore Pacific Museum of Art) Chapter Two :: Chapter Three 전시모음
아모레 퍼시픽 미술관 APMA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 100
CHAPTER TWO
2020.07.28(화) - 2020.12.27(일)
B1 로비, 1~6전시실
방문일자 : 2020.08.22
입장료 : 10,000원
CHAPTER TWO
방문일자 : 2021.03.13
입장료 : 11,000원
2020년 고미술 소장품 특별전 《APMA, CHAPTER TWO》
이번 전시는 두 번째로 진행되는 소장품 특별전으로, 아모레퍼시픽이 그동안 수집해 온
회화와 도자, 금속∙목공예, 섬유 등 다양한 종류의 전시품들을 통해 미술관의 발자취를 소개하고자 기획되었다.
첫 고미술 소장품 특별전인 만큼 최대한 많은 수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우리나라 고미술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1,500여 점의 다채로운 작품들이 재질과 쓰임새에 따라 7개의 전시실에 배치되며,
관람객들은 이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드러나는 각각의 개성과 미감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고종임인진연도8폭병풍>은 1902년 음력 11월에 열린 조선왕조의 마지막 궁중 잔치를 그린 그림입니다. 고종황제의 51세 생신과 즉위 4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궁중 연향이 오른쪽에서부터 개최되었던 시간 순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오른쪽에서부터 1-2폭은 임금과 신하가 참여하는 외진연이고, 다음 3-4폭은 대비나 왕비 등 여성을 비롯한 왕실의 주요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내진연입니다. 5-6폭은 앞서 묘사된 내진연과 같은 날 밤에 열린 잔치인 야진연의 모습이 그려졌고, 7폭에는 황태자가 연회를 준비한 관리들을 위하여 행사 다음날 베풀었던 익일회작 장면이 기록되었습니다. 병풍의 마지막 8폭에는 이 궁중 행사를 준비했던 담당자인 진연청 관리들의 직위와 이름이 쓰여있습니다. 궁중 연향 장면뿐만 아니라 참여했던 관리들의 이름까지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는 이 병풍은, 세부 표현의 수준이 높고 제작 당시의 병풍 장황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사료로도 가치가 매우 큽니다.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는 보타락가산의 관세음보살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찾아온 선재동자를 만나는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을 맑은 물에 비친 달빛에 비유한 <수월관음도>는 관음신앙이 성행한 고려 후기에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현재 국내에 현존하는 수월관음도는 단 5점뿐입니다. 아모레퍼시픽은 해외 소재 한국 문화재 환수의 일환으로 그 동안 일본에서 소장되던 이 작품을 2004년에 구입하였습니다. 2005년 보물 제1426호로 지정된 이 작품은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표현으로 고려시대 불교회화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보름달을 연상시켜 '달항아리'라고 불리는 <백자대호>(보물 제1441호)는 단순한 형태와 부드러운 우윳빛깔이 어우러져 우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조선시대 백자의 대표 작품입니다. 풍만한 백자 달항아리는 몸체의 위와 아래를 따로 제작한 후 이어 붙여 하나의 기형을 만들기 때문에 비대칭의 형태를 이루어 자연스러우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아모레퍼시픽그룹 신본사는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의 작품입니다.
그는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의 절제된 아름다움에 영감을 받아 단아하고 간결한 형태의 신본사 건축을 설계했습니다.
2021년 현대미술 소장품 특별전 《APMA, CHAPTER THREE》
이번 전시는 개관 이래 두 번째로 개최되는 현대미술 소장품 특별전으로,
《APMA, CHAPTER ONE》에서 공개되지 않았던 현대미술 소장품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예정입니다.
7개의 전시실에는 회화, 설치, 사진, 미디어, 공예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50여점이 펼쳐집니다. 국내외에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선정하였고, 작품의 제작 시기는 1960년대부터 2020년까지로 포괄하여 주요 현대미술의 흐름과 더불어 최신 경향까지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전시장은 건축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가벽을 최소화하고, 각 전시실에서는 작품의 특성을 극대화하여 전시함으로써 심도 있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였습니다.
<브루노 타우트에 대하여>와 <스턴바우 No. 29>는 2005년 시작된 <나의 거대 서사> 연작에 속합니다. 연작에 포함되는 설치, 드로잉, 조각들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대한 작가의 문학, 철학, 건축적 사유를 담고 있습니다. 전시된 두 작품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표현주의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의 책 <알프스 건축>(1919)에 수록된 그의 드로잉과 글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과 독일제국의 붕괴 전후로 작업한 이 책에서 타우트는 전쟁에 자원을 소비하는 대신 알프스 산맥에서 뻗어나가는 크리스탈과 유리로 이루어진 눈부신 도시를 건축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건축을 통해 연대를 형성하면 무질서가 만연한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바람이 담겨있었습니다.
이불은 타우트가 실현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유토피아적 건축을 제안한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작품의 주제로 선정하였고,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완벽함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샹들리에를 연상시키는 <브루노 타우트에 대하여>는 마치 도시 건축 모델이나 타우트의 드로잉 중 하나를 거꾸로 매달아 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스턴바우 No. 29>에서 ‘스턴바우’는 ‘별자리’라는 뜻을 가진 동시에 브루노 타우트가 표방하였던 극단적 이상주의를 상징하였던 단어로 유리 건물들이 햇빛을 반사하는 모습을 뜻합니다. 또한 작품의 나선형 골조는 러시아 구성주의 작가이자 건축가 블라디미르 타틀린의 실현되지 못한 건축 모델 <제3 인터내셔널 기념탑>(1919-1920)의 형태와도 닮아있습니다.
두 작품의 건축적 미감에 더해진 어딘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을 주는 강박적인 화려함은 타우트의 과열된 낙관주의를 향한 풍자적인 오마주로 보이기도 합니다.
<크러쉬>는 크리스털 구슬과 유리구슬을 꿰어 제작한 작품으로, 역시 이상화된 여성 신체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유리, 크리스털, 시퀸(sequin) 등 반짝이는 재료의 사용은 작가의 어린시절 부모님이 구슬을 꿰는 가내수공업으로 생계를 이어 나갔던 기억과 연관이 있습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표면은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을 듯한 에너지를 발산하지만, 동시에 껍데기만 남겨진 듯한 형상은 언제든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만 같이 느껴집니다. 아름다움과 불안함을 모두 안고있는 모호한 상태의 신체를 통해 작가는 조건과 한계와 운명에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이불(Lee Bul, 1964-)은 영화, 문학, 근대건축,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감을 얻어 퍼포먼스, 영상, 설치, 회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며 미술의 형식적, 서사적 확장을 이뤄왔습니다. 특히 신체나 건축물 등 개인과 사회의 구조적 시스템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과 그에 대한 좌절을 작품에 표현합니다. 《APMA, CHAPTER THREE》 에서는 이불의 조각 네 점을 소개합니다.
작가는 활동 초기인 1980년대 후반부터 자신의 몸을 사용한 퍼포먼스를 통해 여성의 몸을 향한 사회적 편견을 전복하고자 시도하였고, 점차 인체 전반으로 작품의 소재를 확장하였습니다. 1990년대 후반 일본 만화에서 모티프를 얻어 <사이보그> 시리즈를 제작하며 기술의 발전을 통해 완벽함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탐구하였습니다. <사이보그 W7>은 그중 일곱 번째 작품으로, 여성의 몸과 기계 장치가 결합된 혼성체입니다. 기술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만들어진 이 불멸의 존재는 당당한 전사 같은 자태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머리, 팔, 다리 일부를 잃어버린 불완전한 형태에서 비롯되는 상실감은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를 드러냅니다.
루비는 자신의 콜라주 작업을 ‘부정한 결합(illicit merger)’이라 칭하며 캔버스 위에 표현주의와 미니멀리즘, 유동성과 정체 등 상반되는 개념을 충돌시키고 서로 어울리지 않는 형상, 기법, 재료 간의 조화를 이루어 냅니다.
화면 중앙과 하단부를 수직,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판지 조각들이 창문의 그리드를 형성합니다. 반듯하게 잘린 판지 띠는 대칭적 화면을 구성하는 반면 띠 양쪽에는 분홍, 하늘, 초록색 물감이 두껍고 불규칙하게 칠해져 있습니다. 물감 위에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과 천 조각에 새겨진 에너지 넘치는 표백 흔적에서는 작가의 열광적인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루비는 작가의 주관성과 예술적 기교를 배제한 미니멀리즘에 강하게 반대해왔습니다. 캔버스 위에 충돌하는 형상과 표현 기법들은 이러한 예술적 대립을 보여주는 동시에, 혼란스럽고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냅니다.
독일 목공예가 에른스트 갬펄(Ernst Gamperl, 1965-)은 목공 일을 배우던 중 우연히 선반 기술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정규 미술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은 갬펄은 생목을 사용하는 그만의 창의적인 목선반 공예 작품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생목이란 아직 습기를 머금고 있는 상태의 나무를 말합니다. 나무는 수분이 증발할수록 수축하고 뒤틀리며 그 형태가 극적으로 변합니다. 따라서 목재를 사전에 건조한 후 작업하는 전통적인 방식과 달리 갬펄의 작품은 각 나무 고유의 결, 옹이, 가지가 자라난 방식 등에 따라 작업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모습이 바뀝니다.
갬펄은 이러한 나무의 건조 방식이 형태에 미치는 영향을 지난 30년간 연구해왔고 이를 창작 과정의 일부로 온전히 수용합니다. 자연의 잠재적인 힘을 존중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자연에 대한 그의 존중은 살아있는 나무를 베지 않고 바람에 쓰러지거나 물에 떠내려온 나무만을 사용하는 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작가는 나무 종류마다 각기 다른 속성을 바탕으로 재료를 선택하며, 목재를 자르는 순간부터 결의 방향과 모양을 파악하여 형태의 변화를 예측합니다. 그리고 선반 작업을 하는 동안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형태만을 고집하지 않고 나무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나무가 자연스레 되고자 하는 것에도 귀를 기울입니다. 보통 최소 백 년 넘은 나무를 사용하는데 이토록 오랜시간동안 나무에 작용한 자연의 힘이 이끄는 대로 작업의 방향을 맞추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루의 작업을 마치면 선반에 남겨진 나무를 천으로 덮어 적정한 수준의 습기를 작업 내내 유지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나무가 간직한 세월의 흔적과 상처, 뒤틀림이 기물에 그대로 남겨집니다. 유기적인 곡선과 패이고 갈라진 상처는 자연의 힘과 작가의 손이 이루어낸 완벽한 균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무의 표면을 연마하고 왁스칠 또는 석회칠을 하거나, 섬세한 홈을 내는 등의 표면 처리 방식은 때로는 벨벳과 같은 촉감을 선사하고 때로는 거칠고 깊은 상처를 더욱 두드러지게 합니다. 이는 나무가 주는 특유의 감동을 더욱 숭고한 것으로 끌어올립니다. 각 작품의 제목이 되는 일련번호는 나무의 역사를 기록합니다. 예를 들어 71/2017//230은 230년 된 나무를 2017년, 71번째로 다시 태어나게 했음을 의미합니다.
<다섯 개의 색, 다섯 개의 형용사>는 제목 그대로 ‘형용사’라는 단어를 각기 다른 다섯 가지의 색, 그리고 다섯 가지의 언어로 보여줍니다. 작품이 말하는 바와 작품의 외형을 완벽히 통합하여 언어가 곧 작품의 내용이 되었습니다. 코수스는 단어를 그 어떠한 맥락이나 매체로부터도 분리하여 그 외의 것들과의 연관성을 배제시켰습니다. 또한 작품에 사용된 색상들은 당시 네온 조명이 생산되던 기본 원색들로, 미적 요소로서 선택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섯 개의 다섯 개(도널드 저드에게)> 역시 같은 이유에서 빨강, 파랑, 노랑, 초록, 주황, 보라, 흰색, 총 일곱 가지의 버전으로 제작되어 작품의 개수마저 재료의 속성에 의해 정해진 것입니다.
이로써 코수스는 미술은 더 이상 형태나 색깔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의미의 생성과 표현 과정에 대한 것임을 보여주고자 하였습니다.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 1945-)는 개념미술의 선구적인 인물입니다. 개념미술은 1960년대 중반 대두된 현대미술의 주요 경향으로, 작품의 물질적 형식보다 개념과 과정을 중요시하며 미술의 본질에 대해 질문합니다. 코수스는 1969년에 집필한 에세이 <철학 이후의 미술>에서 미술은 미적 가치나 취향에 기반한 전통적인 표현방식을 버리고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개념미술의 확립에 중추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1960년대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코수스를 포함한 1세대 개념미술가들은 특히 미술의 언어적 성질을 이해하는 것에 집중하였습니다. 캔버스와 붓 대신 언어나 문자 그 자체를 표현 수단으로 활용하여 사물의 의미와 본질에 접근하고자 하였으며, 언어의 형성과 역할, 그리고 미술에서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탐구하였습니다.
코수스는 1965년 스무 살 때부터 네온으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하였고, 모든 네온 작품에 동어반복을 적용하였습니다. 동어반복이란 정의하는 말이 정의되는 것을 되풀이하는 표현 형태로 자기 지시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섯 개의 다섯 개(도널드 저드에게)>는 영문 철자로 쓴 1부터 25까지의 숫자가 다섯 단어씩, 다섯 줄로 나열되어 있습니다. 보통 숫자가 커질수록 단어의 길이가 길어지기 때문에 내려갈수록 줄의 길이 또한 점점 길어집니다. 따라서 미적 가치나 디자인 원칙이 아닌 작품의 내용, 즉 수의 개념에 의해 작품의 형태가 결정된 것입니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 ‘도널드 저드에게’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드는 모더니즘 이후 미술이 회화와 조각으로 나뉘어 이해되던 전통적인 인식을 깨뜨리고, 형식주의에서 벗어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해준 인물로, 코수스는 저드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을 표현해왔습니다. 코수스는 이 작품에 대해 단어로써 저드를 ‘모방’하고자 시도한 것이라 말하였습니다.
관람객의 위치에 따라 시선의 방향에 따라 빛의 반사를 달리하여 숨겨진 단어를 볼 수 있었다.
이건용(Lee Kun-Yong, 1942-)은 ‘공간과 시간 미술학회(S.T)’의 설립자이자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의 주요 인물로 한국 전위예술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1970년대에 캔버스의 한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당대 작가들과 함께 ‘탈평면’을 시도하며 1975년부터는 5년간 50여 개의 퍼포먼스 작업을 선보일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중 첫 번째 상황에서 행해진 이 작품은 작가가 자신의 키만큼 높은 베니어판 뒤에 서서 팔을 앞으로 넘겨 팔이 닿는 길이만큼 선을 위아래로 그려나간 것입니다. 한 줄의 선이 모두 그어지면 그려진 부분을 톱으로 잘라내고 다시 같은 행위를 반복했습니다. 합판을 잘라낼수록 팔이 닿는 면적이 손목까지의 길이, 팔꿈치까지의 길이, 어깨까지의 길이 등 점차 넓어지면서 선이 길이가 길어집니다. 화면을 모두 채운 후 잘라낸 조각들을 차례대로 다시 쌓으면 작가의 신체 비율을 보여주는 그림이 완성됩니다.
함께 전시된 기록 사진을 들여다보면 작업의 결과보다 이를 만들어낸 과정, 즉 화면과 신체가 만났을 때 일어나는 ‘이벤트’가 작품의 핵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작가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신체의 궤도와 반복적인 움직임 속에서 생기는 미묘한 변화를 시각화하였습니다. 화면의 아래로 향할수록 붓질의 길이가 길어질 뿐만 아니라 더욱 곧고 밀도 있으며 흰색과 검은색 물감이 점차 골고루 섞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작업의 결과물은 평면 지지체에 그려진 회화 형태이지만, 이는 결국 공간과 신체의 관계에 대한 실험적 행위인 것입니다.
미국 뉴욕 브롱스 출신 작가 로셸 파인스타인(Rochelle Feinstein, 1947-)은 회화, 판화, 비디오, 조각, 설치미술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동시대 문화의 쟁점들을 탐구합니다. 글자를 접목한 추상화로 가장 널리 알려졌으며, 급변하는 현대의 사회적 또는 개인적 주제를 담아냅니다.
초록색과 노란색 색면이 기하 추상화처럼 캔버스를 채우고, 각진 형태의 말풍선과 뾰족한 꼬리, 그리고 문자들이 추상적 형상이 되어 화면 위를 부유합니다. 말풍선 안에는 “Love Your Work” 즉, “작품 너무 좋아요”라는 문구가 반복적으로 쓰여 있습니다. 미술계에서 흔한 칭찬의 말인데 작가는 의미없이 버릇처럼 쓰이는 이 상투적인 문구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작가가 작업에 대한 혹독한 평을 받은 이후에 제작되었습니다.
얀 보는 베트남에 수입된 소비재 운송용 종이 상자에 금박을 입히는 작품을 지속적으로 제작해왔습니다. 재활용 더미에서 다 쓰고 버려진 상자를 수집하고 태국 전통 금박 공예가에게 보내 알파벳, 숫자, 상표 로고, 또는 성조기 등의 모양으로 치장하는 작업입니다.
《APMA, CHAPTER THREE》에 전시된 <숫자 (7)>은 이 중 하나로 종이 상자에 숫자 ‘7’의 모양을 남기고 나머지 부분을 금박으로 뒤덮은 작품입니다. <숫자> 시리즈 이전에 제작된 <알파벳> 시리즈는 미국의 수학자 나다니엘 보디치(Nathaniel Bowditch)가 1800년대 만들어 세계 무역을 발전시킨데 기여한 항해 시스템에 사용된 라틴 알파벳을 차용하였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숫자> 시리즈의 아라비아 숫자들은 오늘날 전세계에 통용되는 가장 일반적인 기호로써 세계화를 의미합니다.
작가는 폐기된 일회용 물품을 부의 보편적인 상징이자 종교화의 배경 또는 동남아시아의 사찰을 호화롭게 장식하는 금으로 회생시킵니다. 재탄생한 상자는 안에 들어있던 물품이 아닌 그 자체로서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됩니다. 상자 전체를 완전히 뒤덮는 대신 특정 부분을 남겨 놓음으로써 섬세하고 화려하게 빛나는 금과 지저분한 상자의 본래 표면이 극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표면의 구김은 물론 테이프와 스티커가 노동과 무역의 흔적이 되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가는 순수미술과 일상용품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동시에 경제, 문화, 그리고 종교적 가치를 충돌시킵니다. 또한 국제 무역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상업화와 상품화, 그리고 그에 의해 매겨지는 사회의 가치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초록색과 노란색 색면이 기하 추상화처럼 캔버스를 채우고, 각진 형태의 말풍선과 뾰족한 꼬리, 그리고 문자들이 추상적 형상이 되어 화면 위를 부유합니다. 말풍선 안에는 “Love Your Work” 즉, “작품 너무 좋아요”라는 문구가 반복적으로 쓰여 있습니다. 미술계에서 흔한 칭찬의 말인데 작가는 의미없이 버릇처럼 쓰이는 이 상투적인 문구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작가가 작업에 대한 혹독한 평을 받은 이후에 제작되었습니다.
작가는 일상 속 언어의 사용에 대해 고민하며 언어에 관한 사회적 관례를 탐구하고, 가변적인 메시지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러브 바이브>에 쓰인 문구는 불규칙하게 조각나 있거나, 반복되고, 높낮이가 다르게 그려졌습니다. 주어와 문장 부호가 생략되어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어조와 의미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과장된 감탄이 될 수도 있고, “당신의 일을 사랑하라”라는 의미심장한 훈계가 될 수도 있으며, 개별 단어로만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초록색의 바탕은 과거에 작가가 티끌없이 펼쳐진 자연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것인데, 오늘날 영화나 방송 촬영시 배경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그린 크로마키 스크린’을 상기시키며 새로운 의미로 읽혀 지기도 합니다.
닉 마우스(Nick Mauss, 1980-)는 작가, 학자, 큐레이터의 경계를 넘나드는 복합적 역할을 하는 미국 동시대 작가입니다. 마우스는 종이뿐만 아니라 도자기, 유리, 천, 조각, 건축 구조물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드로잉의 가능성을 확장합니다. 드로잉은 작가의 기본 창작 방식이며 때로는 전혀 다른 형태의 작품이 탄생되는 연구 과정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이 짓는 입모양>은 유리의 한 면에 그림을 그리고 표면 전체를 은도금하여 이를 뒤집어 반대편에서 바라봤을 때 그림이 삽입된 거울이 되도록 만든 작품입니다. 베레글로미제(verre églomisé)라 불리는 이 기법은 18세기 유럽에서 대중화되어 성유물함이나 휴대용 제단의 종교적 그림 또는 일상적 물건의 장식에 쓰였던 민속 장식 예술입니다. 마우스는 베레글로미제 기법을 과거의 장식 예술 범주에서 동시대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작가는 보통 드로잉 작품에 많은 여백을 남겨 보는 이의 상상과 해석을 유도하는데 <어떤 이들이 짓는 입모양> 역시 이러한 공간의 작용을 통해 관람객과의 관계를 형성합니다. 전시장 내 다른 작품들과 관람객의 모습이 작품에 반사됩니다. 관람객의 공간은 거울 안으로 확장되고 거울은 유리 뒷면에 그려진 그림을 반대로 밀어냅니다. 어지러운 붓질 사이 끊어진 선과 점으로 스케치하듯 모호하게 그린 인물의 윤곽이 보입니다. 관람객은 알 수 없는 이 형체, 거울 속 허상이자 실재하는 전시장 풍경, 그리고 자신의 모습이 교차하는 낯선 경험을 하게 됩니다.
피타 코인(Petah Coyne, 1953-)은 조각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유기적 형태의 조각을 제작하는 작가입니다. 진주부터 박제된 새, 머리카락, 모래까지 일상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여러 재료들을 왁스에 담근 뒤 겹겹이 쌓아 올리는 방식의 조각을 시도하며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작가는 주로 자신이 겪은 개인적 사건, 문학, 영화, 정치적 이슈에서 작품의 주제를 찾는데, 이 작품은 ‘용서받지 못한’ 시리즈 중 하나로, 1992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출연한 서부극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왁스에 담근 조화와 나뭇가지를 겹겹이 쌓아 올리는 노동집약적인 방식으로 제작한 것으로 기쁨과 공포, 아름다움과 그로테스크함, 질서와 혼돈, 빛과 어둠, 부패와 재생과 같은 상반되는 가치들을 동시에 담고있습니다.
“블랙 다다(Black Dada)” 작업으로 널리 알려진 아담 펜들턴(Adam Pendleton, 1984-)은 시각 문화와 문학, 철학, 미국 흑인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자료를 참조 및 차용하여 글과 이미지를 재조합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해석을 이끌어냅니다. “블랙 다다”란 펜들턴이 2008년 발전시킨 개념으로, 흑인의 정체성(‘blackness’), 할렘 아방가르드 예술운동, 다다이즘, 추상, 개념주의 등을 탐구하고 교차시키는 작가 작업의 이론적 틀입니다.
APMA, CHAPTER THREE에 소개된 <나의 구성요소들>은 작가의 콜라주 작업을 투명한 마일라(Mylar) 필름에 검정 잉크를 사용하여 실크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입니다.
각 작품에는 아프리카 조각과 마스크 이미지, 작가가 소장하는 책의 페이지들, 작가가 직접 쓰고 그린 문구와 기하학적 도형, 반복적인 선으로 이루어진 무늬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중첩되어 있습니다. 규칙적이면서도 자유로운 형태의 글귀와 이미지들이 한 액자에서 다음 액자로 이어지며 5.7미터에 이르는 전시장 층고 가득 역동적인 패턴을 펼쳐냅니다.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서로가 서로를 부분적으로 감춰 처음 마주하면 그 형상을 즉각적으로 읽어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곧 차용된 이미지들과 함께 “I AM NOT THE”, ”BUT NOW I AM”, “WHAT IS THE BLA” 등 작가가 써 내려간 미완성의 문구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관람객에게 문제를 제시합니다. 조각난 문구와 이미지들은 역사적, 문화적 서사 속에 존재하는 공백, 중복, 모순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작가는 병치와 중첩을 통해 이러한 서사를 재맥락화함으로써 정체성, 식민주의, 추상, 그리고 시각 문화 진열의 역사와 위계 구조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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